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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념대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김대중 평전을 읽고)
    카테고리 없음 2024. 8. 3. 22:43

    새벽 김대중 평전, 김택근 지음

     

     [신념]

      사람이 신념대로 살아갈 수 있으려면 어디까지 내놓을 수 있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가난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은 돈 앞에서 좌절된다. 권력에 연연한 사람은 지위 앞에서 무릎 꿇는다. 신념은 있으되 감옥살이까지는 할 수 없는 사람은 그 선에서 은퇴한다. 다 버릴 수 있으나 목숨까지 내놓을 수 없다는 사람은 생명의 위협 앞에서는 당연히 굴복한다. 사람이 신념대로 산다는 것과 어디까지 내놓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밀접한 함수관계가 있다.(p.155)

     

      나는 회사에 다닌다. 회사에 다니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다. 돈을 버는 이유는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오로지 나다. 물론 20대에 일할 곳을 찾던 시절,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만 해도 나름 사회적 소명의식은 있었다. 국가 산업에 도움을 주고 우리 사회를 조금 더 나아지게 하는데 일조한다는 수준에서 말이다. (지금은 없지만)

      아이가 있다보니, 휴일에 날씨가 안 좋으면 동네에 있는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에 종종 간다. 입장료 무료에 내부는 넓고 쾌적해서 아이를 풀어놓기 좋아서다. 1층엔 넓은 통창을 겸비한 카페도 있어 큰돈 들이지 않고 쉬기에도 좋은 곳이다. 그러다가 매번 무일푼으로 들락날락하는 게 겸연쩍어 김대중 평전을 하나 샀다. 

     

      내가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알고 싶은 게 하나 있었는데... 

     

      "자기 자신과 가족까지 다치게 하면서까지 당신이 옳다고 생각했던 '민주주의'를 이 나라에 심을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입니까?"

     

    이거였다.

     

       책을 읽고 난 후 그 답을 '신앙'이라고 내 멋대로 내놓았다. 우선 대통령께서 가지셨던 신앙에 내게 좀 놀라웠던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블로그에 수없이 썼지만 난 교회를 안 간다. 교회의 가르침이 맘에 안 들고, 운영시스템이 옳지 못하다는 것 등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성경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안 간다. 허구의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이야기를 가지고 현실의 세계관을 논한다는 게 난 좀 웃기게 느껴진다. 마치 영화 매트릭스를 보고 현실이 가상프로그램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성경이 진짜 진실이 아닌 이상 다시는 신앙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통령의 글을 읽어보니 이미 이분은 성경이 쓰인 역사, 기독교의 역사에 대해 나보다 훨씬 잘 알고 계셨다. 그럼에도 깊은 신앙을 가지고 계신 이유는 성경에서 말하는 '의'에 대하여 깊은 공감을 하시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 핵심 때문이었다.

      성경무오설을 주장하는 사람들 때문에 성경이 역사적 진실인지 아닌지를 파헤치느라 정작 나는 진짜 중요한 걸 놓치고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 때문에 왜 내가 나의 성경탐구, 즉 신앙을 놓아야 하는지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이런 반향을 바라고 책을 쓰진 않았겠지만, 이 책을 읽은 후로 교회 비판은 그만두고 나 자신을 위해 성경을 조금 더 읽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잡설이 길었다.

       대통령께서는 상당한 수준의 신앙을 가지고 계셨고, 의를 위해 목숨도 내놓은 예수의 행동에 동의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본인도 그렇게 하셨던 것 같다. 민주주의라는 대의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셨던 것이다. 

     

    [용서]

      사형선고를 받고 감방에서 쓴, 대통령의 '용서'라는 수상이 있다.

       우리가 남을 용서한다는 것은 내가 선하고 의롭기 때문이 아니다. 나도 용서받아야 할 죄인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전에는 자기가 죄인이라는 말을 몹시 싫어하고 어리석은 소심자의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사고방식을 가졌던 나야말로 얼마나 어리석은 몰지각을 범했던 것인가!
       나는 나의 지난 일생을 돌아볼 때, 제일 내가 남몰래 저지른 가지가지의 수치스러운 일들, 악한 행위들 그리고 마음에 품었던 수많은 사악하고 부끄러운 것들을 생각할 때 만일 그것들을 모두 극장의 스크린에다 그대로 비추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이를 지켜보라 한다면 과연 나는 나의 가족으로부터 조차 현재의 믿음과 존경을 유지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하다. 나는 내가 죄인이기 대문에 남을 용서해야 하고 기꺼이 용서한다.
       용서는 따지고 보면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용서함으로써 인격적으로 의로워지고 정신적으로 건강해진다. 용서하지 않고 남을 증오하고 저주한다는 것은 자기를 괴롭히고 고독하며 편협하게 만들 뿐이다.
      용서만이 진정한 대화와 화해의 길이다. 타인의 결함과 과오에 대한 용서 없이 어떻게 합의에 이르는 대화와 공동의 목적을 위한 화해가 가능할 것인가?
       용서 없이는 사랑이 없다. 부부간이건 부자간이건 벗과의 관계건 용서할 때만 사랑의 문은 열린다. 우리는 용서하고 또 용서해야 한다. 그리고 용서받고 또 용서받는 것이다.(1980년 11월 25일), (p160)

       

      대통령은 자신을 죽이려 한 '전두환'과 '노태우'를 이미 감옥에서 용서하셨고 대통령이 된 이후 용서를 실천하셨다. 대통령의 용서는 단지 기독교적 신앙관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다. 패자에 관대했던 우리 민족의 역사적 사실들과 여러 역사적 사실들을 종합해 사고한 결과였고, 강력한 보복보다 용서와 포용이 결국 인류의 진일보에 기여한다는 대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도 그의 용서론에 일정 부분 동의한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보복은 보복으로 이어져온 역사가 있고, 특히나 어느 한쪽의 완전히 우위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평화는 구축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에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에서 정한, 사전에 모두가 합의한 법과 제도에 따른 처벌은 용서와 별개로 진행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간 우리는 대의를 위해 독재자와 국가를 전복하려는 자, 나라 팔아먹은 사람들을 죽이진 않았다. 그 결과 용서받은 자들은 하나의 선례가 되어 사회적 정의를 훼손하고 있다. 성공하면 아주 좋고 실패해도 죽지 않는다는 선례 말이다. (정작 누군가는 쿠데타와 민주주의 탄압으로 인해 저항하다가 죽었다.) 개인적 용서는 개인의 권한 내에서 해결하고 사회적 용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것 아닐까?

     

    [행동하는 양심]

       나는 민주주의를 거저 얻은 세대다. 나는 투쟁해 본 적 없고 나에게 주어진 민주주의 제도를 잘 이용해 왔다. 그렇기에 민주주의가 숨 쉬듯 쉽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누구나 민주주의를 쉽게 이야기하고 독재타도를 쉽게 이야기한다. 심지어 독재자의 사상을 이어받은 그 사람들도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잘 정착되기 위해서는 현대사의 팩트를 여실히 검증해서 사람들에게 잘 교육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내 접었다. 이미 그런 팩트들을 이 책처럼 시중에 널리 있고 인터넷에서도 의지만 있으면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팩트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 옳은 것을 탐구할 의지가 없고 사의를 위해 정의를 팔아먹는다. 즉, 양심이 없다.

       물론 누가 진짜 정의냐에 대한 답을 아주 정밀하게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옳고 그름을 따지려들지 않는 것은 어차피 전교 1등 못하니까 공부 안 한다는 학생의 핑계와 같다.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여러 일들 중 대부분은 큰 틀에서 양심과 비양심으로 나눠지고 애매한 건 소수일 뿐이다. 애매한 건 여러 사람들의 토론을 통해 정해 가면 된다.

       그런데 요즘은 비양심인 자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 같다. 대게 양심 있는 자들은 대게 제정신인자들이라 자기 삶을 영위하기에 바쁘다. 그래서 현재의 평온한 일상을 유지하고 싶어 하고 그 때문에 큰 목소리를 내고 싶지 않다. 

       난 이대로는 좀 우리 사회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진보 아닌 후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행동해야 한다. 양심 있는 자들은 지지하고 비양심인 자들은 비난하는 일.

     

      오늘 글은 여기서 마친다. 

    끝.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