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른은 꿈꾸지 않는가.
어릴 땐 참 꿈이 컸다. 나는 내가 굉장히 대단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적어도 내가 일하는 분야,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는 아주아주 상위권에 도달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30대쯤 되니 그런 꿈들은 사라졌다. 높은 수준에 오르고 싶어 하는 마음은 나만 가진 것이 아니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 사라졌다.
물론 나도 노력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꿈이 사라지고 나서는 최대한 편안하게 내 삶을 유지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였다. 한동안은 꿈꾸지 않는 내 자신을 못나게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오래가진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꿈을 이루라고 배워왔던 사회의 교육시스템이 그저 이 사회를 잘 굴러가게 하기 위한 엘리트들의 이기심으로 쌓아진 것처럼 보여서였다. (물론, 사회의 모든 발전과 부의 증가가 엘리트를 위한 것이라고 극단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나 또한 그 혜택을 보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왜 어른은 꿈을 꾸지 않는가. 꿈보다 현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더 멋지고 화려한 세상을 만들고 싶은 것은 세상을 움직이는 누군가의 마음 아닐까? 내가 살고 있는 이 동네에서, 영향력이라곤 내 집 방구석뿐인 사람에게 세상을 위한 꿈은 마블의 세계관만큼이나 동떨어진 느낌이다. 그러니 제 삶을 살아가기 바쁜 어른은 꿈을 꾸지 않는다.
왜 어른은 꿈을 꾸지 않는가에 대한 생물학적 분석도 있다. 노화 때문이다. 25살즈음 전후로 시들어가는 몸이 꿈을 접는 것이다.
혹시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해본적이 있다면, 내 분석에 공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회사의 주가가 오를 때, 그 회사의 투자자들은 행복한 상상에 빠진다. 대부분은 앞으로 부자가 되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그 상상을 이루어주기 위해 회사가 더욱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가가 오를 때에는 여기저기 장밋빛 전망이 넘쳐난다. 회사가 어떤 경영 움직임을 보여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자그마한 투자 확대에도 투자한 산업 전체의 시장 이익을 바라보며 미래 목표주가를 산정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주가는 더욱 오른다.
하지만 주가가 떨어질 때는 전혀 다른 분위기이다. 아직 거품이 덜 빠졌다며 여기저기 안 좋은 분석이 터져 나온다. 투자자들은 주가가 오를 때와 달리 대단히 냉정해진다. 만약 회사에서 투자를 확대 한다고 하면 그게 정말 경제성이 있는지 투자자들이 나서서 분석하고 타당하지 않으면 반대표를 던진다. 심지어는 경영진을 배임으로 고소하기도 한다.
나는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25세 이전까지 매년마다 좋아지는 체력과 지력을 느끼면서, 누구든지 어릴 때에는 나의 성장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터무니없는 도전을 해보기도 하고 모든 것을 뒤엎고 다시 시작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렇게 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노화를 느끼는 순간부터는 달라진다. 1년 전, 2년 전의 나보다 몸이 아프고 무언가에 집중하기 어려움을 느낀다. 늘 자던 대로 수면을 취했음에도 아침에 정신이 말짱하지 않음을 느낀다. 그러면서 생각과 행동이 점점 보수적으로 변한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기 위해 몸을 사용하기보단 현재까지 이루어놓은 능력을 잃지 않으려 더 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른은 꿈을 꾸지 않는다. 현재를 살아간다. 오늘보다 내일이, 내일보다 내년의 내가 더 약해질 것을 알기 때문에 가장 팔팔한 현재를 즐긴다.
오늘 글은 여기까지 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