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중심, 상위 수준에서 생각하기
첫 회사를 다녔을 때, 내 최대 고민은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였다.
매일 아침 영혼없이 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 가야만 하고 집에 있는 동안은 회사에서 일할 에너지를 비축해야 한다는 것이 참 힘들었다. 그냥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수많은 기어 중 하나 같은 나의 모습. 그 당시 자각하는 나였다.
만약 그때의 내가 "프레임"이라는 책을 읽었다면 조금 덜 힘들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의미 중심의 프레임"으로 삶을 더 빨리 보았다면 말이다.
[의미 중심(상위 수준) 프레임 vs 절차 중심(하위 수준) 프레임]
예를 들어 내가 퇴근 후 블로그에 글을 쓰고있는 지금의 상황을 두 가지 프레임으로 나누어보자면 아래와 같다.
1) 의미 중심
- 멋진 필력과 언변을 갖춘 나를 만나기 위한 과정
2) 절차 중심
-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위한 과정
퇴근 후 시간을 쪼개에 글을 쓴다는 것 자체는 피곤하고 고난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 일을 하려 했던 것은 머지않은 미래에 내가 바라던 나의 모습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가 더 어려운 일을 하려고 하고 승진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일하는 것 자체가 즐거웠기 때문은 아니었다. 미래의 내가 더 편안하고 행복한 환경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를 움직였다. 지금 덜 쉬고 조금 더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면 나이 든 내가 짊어질 짐을 덜어 낼 수 있다는 기대 말이다.
나는 이런 식으로 자신을 세뇌하는게 내 의지가 약하고 정신력이 나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그렇게 의미 중심으로 상위 수준에서 생각하며 사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고 한다.
위로가 됐다. 어찌 됐든 나는 잘 살아내고 있던 것이다.
내일이 지나면 나는 다시 본사로 돌아간다. 집 근처의 지점으로 출근하던 편안함을 내던지고 돌아가려니 마음이 매우 고난하다. 즐겁게 일해보겠다는 최초의 프레임을 만들어놓았음에도 시간이 지나면 망각에 의해 프레임은 잊혀지고 현실의 고난만 느껴진다. 이 때는 리프레임이 필요하다. 아래와 같이.
'이 결정은 내가 했고 되돌릴 수도 없다. 내가 이렇게 결정한 이유는 단순히 고난한 일을 맡기 위한 것이 아니다. 나는 가능한 빨리 퇴사하여 회사를 차리기 위해 한 것이다. 지금은 나에게는 충분히 일에 집중할 시간이 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능력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 안에서 큼직한 일을 해보면 내가 큰 물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 정도되면 나는 비로소 회사의 품을 벗어나 독립 할 수 있다.'
오늘 글은 여기서 마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