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선 같은 아빠
바쁘게 일하느라 통 그런 생각하는 걸 잊었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것 말이다.
사실 이런 건 생각만으론 답을 낼 수 없다. 깊이 생각하다 보면 삶이 너무 보잘것없이 느껴져 우울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생업에 뛰어든 이후로는 이런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인생에 도움이 안 되니까.
그런데 요즘은 다시 그 생각을 한다. 우리 아이가 어디서 왔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비포 선라이즈의 남자 주인공이 했던 시시껄렁한 고민과 함께 떠올린다. '분명 세계 인구는 단 한 번도 줄어들지 않고 계속 늘어났는데, 수 많은 새 자아들은 어디서 생겨났을까?'
나의 아이는 내가 아니었다면 이 세상에 없었다. 다른 세상에는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히 이 세상에는 없었고 나와 아내 때문에 생겨났다.
'없었는데 생겨났다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하나님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나와 아내도 그것을 해낸 것이다.
그런데 무에서 유를 창조했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세상에 없던 생명을 탄생시킨 책임이다. 이 세상으로 초대한 우리 아이를 그냥 대충 시간 때우다가 저 세상으로 가게 하면 아이를 이 세상에 불러온 도리를 못한 것이다. 아이는 이 삶을 선택당했기 때문에 잘해줘야 한다.
그래서 요즘 나는 아이가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내면에 행복함을 차곡차곡 쌓을 수 있을지 연구 중이다.
그 연구의 첫 단추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아이의 내면에 행복함을 쌓는 방법에 대한 레퍼런스를 찾아봐야 하는데, 가장 신빙성 있는 조사 결과가 나의 내면이라서 나를 되돌아보고 있다.
되돌아보는 방법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과연 나는 요즘 행복한가? 과거에는 행복했나? 언제부터 나는 행복했을까? 나는 무엇을 행복이라고 정의했나? 언제부터 그랬나?... 등등 끝없는 생각을 물고 이어갔다. 그러다 보니 자동차 뒷좌석에 누워있던 아주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해남으로 가는 승용차 뒷자리, 차는 덜컹거리고 엄마 아빠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공기도 좋고 노랫소리도 좋고 모든 게 평온했다. 더 이상 애를 써보아도 그 이상 과거로 기억이 돌아가지 않았지만, 이내 그럴 필요조차 없다는 생각을 했다. 내 행복의 근원이 보였기 때문이다. 내 행복의 근원은..
"엄마 아빠의 행복"이었다.
나의 어린 시절, 내가 본 엄마 아빠가 정말로 행복했는지 내 앞에서만 행복한 척을 하셨는지 그 진의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늘 함께 있을 때 행복함을 보았다. 나는 그 덕분에 세상을 행복한 곳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럼 어떻게 하면 나와 아내가 행복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관심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 관심은 마음을 쓰는 것이고 마음 쓰는 곳에 행동을 나서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아내와 서로의 정서가 안정될 수 있도록 좋은 기운을 주고받으면 행복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커다란 크루즈선 같은 아빠가 되고 싶다.
통통배를 타고 먼바다에 나가면 바다가 너무나 무섭지만 크루즈선은 그렇지 않다. 크루즈는 워낙 크고 무거워서 어지간한 바닷물결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통통배를 탄 사람과 달리 크루즈선 안에 있는 사람은 바다를 평온하고 풍족한 곳이라고 기억할 것이다.
내 아이가 삶을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나와 아내가 평온한 환경을 마련해준다면, 이 세상에 아이를 불러온 적절한 책임 이행을 한 것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오늘 글은 여기서 마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