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정리
오늘로 내 모든 보험 정리를 끝냈다.
나에게 보험은 미지의 세계였다. 보험 약관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도무지 어려운 단어들이었고, 보험의 보장이란 것도 어떤 것이 내게 필요한지 감이 안 잡혔다. 그래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보험료를 냈다.
최근 한두 해 동안은 어머니가 종종 아프셨다. 수술을 받기도 하시고 입원도 여러 번 하셨다.
처음엔 어머니가 아픈 게 걱정이었는데 병원에 자주 있다 보니 병원비가 걱정됐다. 그래서 어머니가 가입한 보험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치료받을 때는 어떤 것까지만 보험처리가 되는지 부지런히 알아보았다. 다행히 어머니는 보험판매를 하시다 보니 당신의 보험은 넉넉하셨다. 비급여의 아주 비싼 치료방법은 아니더라도 적당한 치료방법들을 선택할 수 있었고, 2인실 정도의 병실에 입원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어머니의 보험들을 찬찬히 살펴보다보니 보험용어들이 어느새 익숙해졌다. 그러다 보니 보험증서 읽는 눈이 생겼고, 그즈음 내 보험증서들도 처음 보았다.
그리고 보험을 다시 설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래는 내가 들었던 보험이다. 현재는 하나 빼고 모두 다 해지하였다.
- 대한생명 CI 통합 종신보험 86,739원(09년도 가입, 20년 납)
- KDB 오래오래 알뜰 종신보험 114,700원(16년도 가입, 20년 납)
- LIG매직카 운전자보험 36,000원(11년도 가입, 20년 납)
총 보험료 237,439원이다.
유튜브에서 보험 관련한 이야기들을 검색하면 가장 기본적으로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종신보험 가입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른 나이에 죽을 확률도 낮은데, 내가 죽고 나서 받는 보험금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똑같이 생각했다. 더구나 나는 회사 재직 중에 죽으면 적지 않은 금액을 회사에서 준다. 사실상 정기보험이 들어져 있는 셈이다. 그런데....
처음 보험을 정리하려고 내 보험내역을 모두 조회했을 때 나를 반겨주던 저 2개의 종신보험을 잊을 수 없다. 남들이 가입하지 말라던 그 종신보험을 내가 들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냥 20년 빨리 채워서 납입하고 죽을 때까지 보장받자! 그런 생각으로 스스로 위안하며 덮어버렸다.
하지만 타조처럼 땅속에 고개를 처박는다고 해서 무엇하나 해결이 되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빨리 이것들을 정리해야 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래서 며칠간 보험 공부를 했다.
우선 대한생명 보험은 유지하고 KDB보험은 해지했다. 대한생명은 이미 절반 이상 납입하였고 특약으로 실손보험이 포함된 반면, KDB는 보험납입금의 절반이 주계약(사망보험)이고 나머지는 수술 특약, 입원특약, 치료특약과 같은 보장성보험이었다. 당초 나는 정기보험, 실비보험, 암보험, 운전자보험 정도만 가입하기로 마음먹었던 터라 시원하게 KDB의 보험을 해지했다.
그리고는 운전자보험을 해지했다. 36,000원짜리 운전자보험. 다른 종신보험이 워낙 비싸서 난 이 보험이 정말 싼 줄 알았다. 그래서 종신보험을 해지하고도 1년 이상을 들고 있다가 어제 비로소 해지했다.
사실 나는 운전자보험의 역할이 뭔지도 정확히 몰랐다. 그냥 사고 나면 돈 많이 드니까 들어야 된 데서 들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자동차보험도 들었단 말이다. 자동차보험과 운전자보험으로 나가는 돈만 연 100만 원이 넘어가다 보니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운전자보험을 공부했다.
내 운전자보험을 열어보니 이건 운전자보험이 아니고 그냥 보장성 보험이었다. 운전자보험은 자동차보험으로 보장이 안 되는 벌금, 형사합의금, 변호사 선임비용 등을 처리하는 것인데 실상 이것들을 보장하는 보험료는 몇천 원에 불과하고 36,000원의 보험료 중 3만 원 정도가 상해치료비, 진단비와 같은 자질 구래 한 보장성 보험료로 납부되고 있었다. 보험사는 합법적으로 사람 등 처먹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이렉트 운전자보험을 알아봤다. 근데 뭘 모르겠어서 보험 관련 유튜브를 찾아봤고, "반값 보험료 만들기"라는 채널의 조언을 참고하여 몇몇 보험사를 골랐다.
알아보니 한화손보는 운전자보험에서 필수 보장들만 해서 월 2,500원짜리를 판매하고 있었다. 36,000원짜리가 2,500원으로 해결된다니, 사람의 불안심리를 자극해서 금융회사들이 이런 식으로 돈을 벌어도 되는 건가 생각하며 속으로 분노했다.
다른 회사인 현대해상, DB손보 상품들도 알아보았다. 대략 10,000원~20,000원 선에서 보장성 보험들을 포함하여 판매하고 있었다.
핵심상품만 가입할지, 아니면 보장성 보험들을 가입할지 고민했다. 수월한 재테크를 위해선 유동성이 충분해야 하는데 단돈 몇천 원이라도 아끼고 싶은 마음과 예기치 못한 사고로 생활고에 허덕일 내 모습이 자꾸 아른거렸다.
결과적으론 2,500원짜리 정말 운전자보험 보장만 있는 것으로 가입했다. 어린이 보호구역 사고 발생 시 모두 보장 가능한 상품이다.
입원비나 응급실진료비 같은 게 나오는 것들과 합쳐서 1만 원 중반대에 가입할까 했지만, 그런 보장들은 비갱신형으로 보장기간을 80세 이상으로 하는 상품으로 하는 게 효과적이라 생각하여 모두 빼버렸다. 운전자보험은 만기와 보장을 길게 가져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 두 보험의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해지 환급비 0%의 월 2,500원짜리 상품이 워낙 막강해서 독립적으로 진행하는 게 나았다.
암보험도 하나 들었다. 일반암 3,000만 원. 100세 보장에 100세 납입으로. 이것도 월 13,000원 정도이다.
이리하여 내 보험료는 아래와 같이 바뀌었다.
- 대한생명 CI 통합 종신보험 86,739원(09년도 가입, 20년 납)
- 교보라이프플래닛 만기까지 비갱신 e암보험 2 13,620원(20년도 가입, 100 세납)
- 한화 다이렉트 운전자보험 2,500원(21년도 가입, 20년 납)
총보험료가 102,859원으로 기존 보험에서 대략 13만 원 이상 줄어든 금액이다.
그간 5년 정도 냈다 치면 780만 원이다. 이자도 못 받은 돈 780만 원을 허공에 뿌린 셈이다.
만약 내가 연 5퍼센트의 수익을 내는 상품에 연 13만 원을 투자했다면 세금 떼고 870만 원을 모았을 것이다.
10퍼센트 수익이었다면 978만 원.
월 13만 원의 돈은 5년 동안의 기회비용 천만 원을 날린 것일 수도 있다.
휴...
보험 가입할 때, 많이 하는 이야기가 "이거 얼마 안 되니까 그냥 없는 돈이라 생각하고 가입해"이다.
그런데 이거 없는 돈이 아니다. 진짜 큰돈이다. 자잘한 500원, 1000원짜리 보장성보험들이 쌓이면 몇만 원이 된다. 그런 보험이 두세 개 있으면 10만 원이 되고 10년이면 1,200만 원을 더 쓰는 셈이다. 1,200만 원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기회비용은 또 얼마일까. 결코 푼돈은 적은 돈이 아니다.
한탄은 오늘까지만 해야겠다.
아직 늦지않았으니 앞으로 열심히 모아보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