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하지 않으면 내 자신을 알 수 없다.("자기결정"을 읽고)
자신을 말로 표현하기
스스로에게 묻는다는 것, 스스로를 이해한다는 것, 변화한다는 것, 이것들은 과연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는 말과 큰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경험하는 것들에 대한 정확한 말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자신에 관해 결정한다는 것, 이것은 자신의 생각에 관해 방향을 정하고 믿어왔던 것들을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린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내가 이 나라에 대해, 이 경제적 성장에 대해, 이 정당에 대해, 내 결혼 생활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맞는 걸까요?
확실하다고 믿어오던 것들에 대해 긍정과 부정의 증거를 찾아가는 동안 나는 그 확신들이 변화할 수 있는 내적 과정의 문을 열게 됩니다. 이 과정이 충분히 반복되면 내 의견의 총합이 완전히 탈바꿈하여 결과적으로 생각의 정체성이 변화하게 됩니다. 때문에 중요한 일을 맞닥뜨렸을 때 그것을 명백히 밝히는 과정이 자기 결정의 한 행위인 것이지요.
특정한 정당을 선택하거나 하나의 종교에 귀의하는 등의 이유가 집안 대대로 그렇게 해왔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사고의 들러리로 살아온 것이지요. 그러다가 비판적 물음을 통해서 익숙하던 생각의 패턴에서 한 발짝거리를 두고 검증 과정을 통해 생각의 주인 자리를 찾게 됩니다. - 자기결정 p.18~19
표현을 통한 자기 인식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사람이 아닌지조차 알지 못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표현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들어 있는 개념을 설명하자면,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이 별달리 자기 인식을 상실하지 않고도 억제할 수 있는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내 표현의 징표들이 삶의 방식과 그 방식 안의 개별성을 인식하게 해주는 소중하고 어쩌면 필수불가결한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인식은 내가 세상에 보여주는 징표와 그를 통해 남기는 발자취를 통해 가능합니다.
표현의 형태는 매우 다양할 수 있으며 반드시 말이나 행위가 아니어도 됩니다. 음률이나 붓의 터치, 공예, 사진, 춤, 옷입기, 요리 집 꾸미기 같은 것도 좋습니다. 무엇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관찰하며 내가 이런 사람이기도 하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기결정 p,.55~56
나는 지금 대체적으로 행복하지만 모든 게 만족스럽지는 않다. 모든게 만족스럽지 않은 이유를 나열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1. 난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행복하다.
2. 그런데 나는 자유로운 시간이 적다. 왜냐하면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최소 주 40시간 이상은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3. 회사 일은 하고 싶은 일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싫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분명히 아니다.
4. 만약 자유로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선다면, 난 지금처럼 돈을 벌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만약 지금보다 소득이 낮아진다면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 해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5.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직업을 찾으면 나는 내가 원하는 행복에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내 사고회로는 5번에 멈추어 있다. 도대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벌수 있는 직업"이 무엇인지 찾아내질 못해서 그렇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에게 하나하나 물어보겠다.
Q.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
A. 대충은 알고 있다. 나는 음향장비 다루는 걸 좋아한다. 별 볼 일 없는 실력이지만 악기를 연주하고 있으면 즐겁다. 집이나 차를 고치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고 장비와 자재를 사서 직접 작업하는 것도 좋아한다. 여행 계획을 짜는 것도 좋아한다. 내가 가는 여행, 가족의 여행, 부모님의 여행, 친구들의 여행계획 세우는 것에도 참견하는 걸 좋아하는 걸 보면 확실히 그러하다. 그냥 걷는 것도 좋아한다. 유튜브 틀어놓고 장거리 운전하는 것도 좋아한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알고 있다 '대충'은..
Q. 그럼 그 일로 돈을 벌 수 있나?
A. 당장은 어렵다. 지금 만큼 돈을 벌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 얼마큼의 시간이 필요할까? 그건 모르겠다. 솔직히 내 주변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나만큼 돈을 버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나는 직업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불확실해서.
그렇다면 원론적인 질문을 해본다.
Q. 나는 왜 처음부터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갖지 못했나? 현재의 내 직업은 누가 하라고 협박한 것도 아니고 내가 선택한 것이지 않나. 내가 원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나? 나는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나?
A. (.....)
수많은 철학자들의 말대로 나는 나를 모른다. 나는 내 온전한 의지가 어느 만큼 인지 모른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어디까지가 내가 진정하고 싶은 일이고 어디까지가 내 주변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이라서 내가 하고 싶다고 느껴지는 것인지 모른다. 나는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한다고 하면서도 어디까지가 내 온전한 자아에 의한 것이고 어디까지가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주변인들의 생각인지 알지 못한다.
이 책의 작가는 주변 환경에 뒤섞이기 쉬운 환경에 처한 내가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표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중 가장 정확한 방법으로 말과 글을 꼽는다.
그럼 직업을 고를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왜 정확하게 자신을 표현하지 못했을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앞서 글에서 밝혔듯이 난 감정의 기복이 크지 않다. 마찬가지로 행복의 기복도 크지 않아서 좋아하는 걸 하면 그 나름 좋고, 안 좋아하는 것도 그럭저럭 괜찮다. 그렇다 보니 내가 의사표현을 정확하게 할 필요가 없었다. 특별히 내가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럭저럭 수용할만 했던 것이다. 게다가 내 가족과 친구들도 모두 비슷비슷해서, 생각의 날을 세우거나 표현을 명확히 하는걸 즐기지 않았다. 오히려 명확하게 표현하고 호불호가 강한 사람들을 만나면 불편함을 느꼈다.
그러니 표현을 정확히, 그리고 많이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지금이라도 내 자신을 표현하고 기록하고 되돌아보는 것을 반복하면 진정한 내 자신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내 인생에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결정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믿는다.
오늘 글은 여기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