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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역설사전

알레시스 2024. 10. 28. 13:11

곽재식의 역설사전

 

[애빌린의 역설]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가 애빌린에 갔다오자고 한다. 여기서는 80km이상 떨어진 도시에 그다지 특별한 것 없는 도시이다. 그 말을 들은 어머니는 별 생각이 없이 좋은 생각이라고 응수한다. 이 이야기를 같이 듣고 있던 사위는 '장모님이 가고 싶으신가보다'라는 생각에 동의하고, 그 집 딸도 남편이 운전해서 가겠다는데 별달리 거절하지 않고 떠난다. 더운 여름, 에빌린엔 멋진 경치가 있는 관광명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적당한 식당이 있는 것 뿐이었다. 가족은 그곳에서 음식을 먹는둥 마는둥 시간을 보내다가 몇시간을 다시 거쳐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제서야 장모님이 힘들었는지 한마디 한다. 

  "나는 다들 가고싶어하기에 따라간거야"

   그러자 사위도 말한다.

  "저도 그렇게 장거리 운전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다들 가고 싶어하기에 반대하지 않은 거에요"

   그 집 딸도 이어 말했다.

  "난 당신 좋으라고 간건데..."

   그 모든 걸 듣고 애빌린 이야기를 처음 꺼낸 아버지가 한마디 한다.
.
.
 "난 그냥 다들 심심해하는 것 같아서 재미삼아 꺼낸말이야. 나라고 뭘 그렇게 가고싶었겠어?"

 

  여러 사람이 의견을 낸 후에 무언가 결정을 해야하는 일을 할때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자기의 권한을 남에게 위임해 버리면 위와 같은 역설이 일어나는 것 같다.

  1. 그 일에 누구도 관심이 없어서 자기의 의사결정을 다른 사람에게 대강 넘겨버리거나

  2. 대세를 거스르고 싶지 않아서 대세에 무조건 찬성하는 것.

  이렇게 되면 그 누구도 만족스럽지 않은 결론에 도달한다.

 

  회사에서 회의를 할때, 국가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투표를 할때 모두 애빌린의 역설과 같은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은 누구나 이야기를 들으면 알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의 인생길을 선택할 때도 애빌린의 역설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도 꼭 말해주고 싶다.

   인생길을 선택할 때, 내가 진정 원하는 것과 부모님이 원하는것, 사회가 원하는 것, 친구들이 선망하는 것 등 여러가지 선택지가 있을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당연히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엔 나같은 호불호가 없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이걸해도 좋고 저걸해도 그만인 나 같은 사람들인데, 이런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게 확실치 않아서 부모님이 원하는 것, 사회가 원하는 것 등 외부에서 선망하는 것을 여러 선택지 중 우선으로 올려놓곤 한다.

  무엇을 앞날의 선택지로 올려놓건 사실 그건 문제없다. 하지만 선택지를 '선택'하는 순간만큼은 자기 자신만 이 세상에 남겨놓아야 한다. 외부적 이유에 따라 선택을 할 경우 내 자신 스스로에게 최선의 선택이 아님은 당연할 뿐만아니라, 사실 이 선택을 하게 만들어준 외부적 요인은 선택이 잘되었건 안되었건 간에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정말 이것도 저것도 상관없고 어떤걸 선택하는 다 그런저럭 괜찮은데 어떡해야하나? 일단 아무거나 골라봐야하나?' 라고 생각할 수 있다.

  회사일이 싫어서 회의 할때 아무말도 하지 않는 사람, 국가 정책에 대해 공부하기 귀찮아서 정치적인 아무 소신없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런 사람들은 회사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건, 국가에서 어떤 지도자가 횡포를 저지르던 할말이 없다. 본인이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았으니까. 그저 그 조직을 떠나면 아무 의견도 피력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런데 내 인생은 그럴 수가 없다. 내 인생 길을 선택하는데 명확한 선을 그어놓지 않은 결과는 오롯이 나에게 적용된다. 내 인생이기에 회사나 국가처럼 도망칠 수도 없다. 완전히 결과의 끝까지 감당하고 삶을 끝내야 한다. 

  그럭저럭 어떤 걸 선택하던지 괜찮다는 건 더 치밀하게 알아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유없는 결정은 없어야한다.

  그러니 애빌린에 가는것 처럼 인생 방향을 결정하진 말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