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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망의 함정,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에너지의 불편한 미래를 읽고)

알레시스 2024. 12. 6. 23:41

 

에너지의 불편한 미래, 라스 쉐르니카우, 윌리엄 헤이든 스미스 저

 

  우리는 일상에서 쉽게 전기를 사용한다. 어디든지 벽이나 바닥에 동그란 콘센트만 있다면 코드를 꽂아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점 덕분에 전기는 다른 어느 현대 기술보다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전기가 아주 쉬워 보인다.

  전기를 이토록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건 근 150여 년의 시간 동안 지독한 표준화와 효율화를 거쳤기 때문이다. 직류와 교류, 50hz와 60hz, 110V와 220V, 단상과 3상 등 전기는 셀 수 없는 모습으로 존재해서 원래는 사용하기 매우 힘든데, 그걸 하나의 형식으로 사용자의 입장에서 정해놓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일반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들어본적 없고 어떻게 생겨먹은 것인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분야가 있다. 전력공학, 전력계통, 전력시스템이라고 불리는 분야다. 발전소에서 사용자에 이르기까지 전력의 흐름을 계산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적정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어떤 선로를 얼마나 어디에 설치해야 할지, 어떤 용량의 설비를 활용해야 할지 선택하는 분야인데 당연히 눈으로 보이는 물리적인 것은 없고 모든 것은 수식으로만 표현된다. 이 부분은 너무 어렵다 보니 비전공자나 전공자 가릴 것 없이 일단 수도관에 빗대어 설명을 듣는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수도관에 빗대어 전력시스템을 이해한 사람들은 전력의 사용량과 공급량은 늘 동일해야하고 일부의 전력선이 무너짐에도 전체 정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일반 사람들이 이해하는 물리세계의 상식과 동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력정책의 결정하는 고위 관료의 대부분은 행정관료이다. 대부분 전력사업을 토목사업 내지는 일반적인 SOC사업과 다름없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장치를 구매해서 잘 설치하면 모든 게 끝난다고 이해를 한다. 기술관료가 있다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전기공학을 학사 수준 졸업한 기술관료라고 할지라도 전기의 수많은 세부 전공 중 전력공학을 세밀히 알고 있을 확률은 높지 않다. 이렇다 보니 전력시스템의 기술적 한계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정책입안에 들어가는 게 가장 큰 문제다.(당연하게도 정책입안자가 해당분야의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내가 전문가가 아니라면 전문가에게 용역을 주고 결과를 받아보면 된다. 그런데 대부분 전문가의 의견을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정책을 입안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한 가지는 새로운 산업분야를 육성한다는 점 때문이다. 석탄, 석유, 가스, 원자력, 수력으로 대표되는 레거시 전력시스템이 그간 전력시장의 전부였는데, ESS, 태양광, 풍력, 수소 등 새로운 방법을 통한 전력시스템을 구성한다는 게 얼마나 매력적인가. 어느 한두 가지 기술을 발견하거나 한두 개의 기업을 키우는 것이 아닌 새로운 산업분야의 발견이다. 새로운 산업분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는 의미이다. 국가적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들은 매년 새로운 일을 해야 하고 실적을 내야 하는데 이만큼 매력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이런 새로운 산업분야를 어떻게 육성하면 될까? 여기서부터 문제가 심화된다. 

   가령 정부의 기조가 자유로운 민간시장 경쟁을 통한 발전을 꾀하는 것이라면 국가주도의 사업추진은 축소될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부고위관료 대부분은 시장주의자이다. 그래서 자유로운 시장경쟁을 통해 최적의 방법이 도출된다고 믿는다. 전력사업도 그렇게 하고 싶어 한다. 애석하게도 한국은 한전이 전력을 공급하는 대표기업으로 있어 할 수 없는 상황이고 과거 한전 민영화를 진행했다가 거센 국민저항에 부딪혔던 적이 있는데, 다행히도 발전사업은 민영화가 되었다. 그래서 신재생발전도 민간시장에 맡겨버린다. 

  전력시스템을 전공한 사람들이라면  해석프로그램을 통해 자유로운 민간시장에서 신재생 발전설비를 설치할 때의 문제점을 쉽게 도출할 수 있다. 그러나 정책입안자는 듣질 않는다. 정책적인 결정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기조를 따라야하는 것이다.  

   만약 정책입안자의 입장에서 시장주의자인 결재자의 마음을 바꾸려고 한다면 오랜시간 공을 들여 백데이터를 만들고 그들을 설득할 수 있게끔 쉽게 자료를 만들어야 하는데 도무지 그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 결과 온 국토에 아무런 질서없이 태양광, 풍력발전 설비들이 들이닥쳤고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주요국의 전력망이 신재생 발전설비로 마비되었다.

 

  신재생 설비가 들어왔는데 왜 전력망이 그리 쉽게 마비될까? 태양광, 풍력설비는 그 간헐성 때문에 그 용량만큼 백업 발전소가 필요하다. 백업 발전소는 석탄, 석유, 가스, 원자력발전소다. 한편 태양광, 풍력발전기는 전력생산량이 적다고 해서 그에 맞추어 전력선을 깔지 않는다. 전력선은 늘 최대로 발전할 수 있는 용량에 맞추어 설계한다. 일 년에 단 하루만 최대용량으로 발전할 수 있더라도 전력선을 그렇게 설치해야 한다.

  그래서 동일한 전력량을 공급하는 레거시 발전기보다 신재생 발전기의 전력선이 훨씬 더 두껍고 크다. 그럼 전력망은 거미줄처럼 엮여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용량을 올려야 한다. 모든 전력선의 두께를 키우던지, 전압이 높은 전력선을 설치하던지.

  과연 이 모든 비용이 정책을 입안할 때 손실비용으로 잘 계상이 되었을까? 에너지의 불편한 미래를 읽어본 결과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 확신이 든다.

 

  에너지의 불편한 미래는 미래를 위해 어떤 전력기술을 개발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