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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복잡할 때 가볍게 다시 꺼낼 책카테고리 없음 2023. 9. 27. 23:12
마음의 지혜, 김경일 저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는 이유가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복잡하게 생각한 후에 내린 결론도 아니다. 그저 내 기분이 어느 거리낌도 없이 좋았을 때, 그때 "행복하다"고 표현하니까 당연히 행복이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했다.
몇몇 인생의 갈림길을 마주했을 때에도 늘 행복이 기준이었다. 이왕이면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걸 고르고, 여러 행복이 있을 때에는 지속시간이 길면서 내 주위의 여러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행복을 골랐다.
글을 쓰다보니 내가 생각하는 행복을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행복의 가치 = 내가 느끼는 행복의 강도 * 지속시간 * 수혜자의 숫자
- 어떤 것을 할 때 얼마큼 행복한가? 행복의 강도는 그 정도를 표시한 것이다. 나는 행복의 표준편차가 매우 작다. 상수가 0~10 사이에 분포한다면 99% 이상이 4~6 사이에 분포되어 있다.
- 행복의 지속시간은 내가 특별한 이벤트 없이 보내는 하루와 비교해서 더 큰 행복을 느끼는 시간이다. 술, 담배, 도박, 보복성 소비, 폭력, 온전히 남들의 부러움을 사기 위한 행동 같은 건 그 지속시간이 짧다.
- 수혜자의 숫자는 나와 행복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숫자이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어찌 알겠냐만은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해본다면 이 수식에서 가장 계량적이다.
나는 하기 싫은 일도 적당히 재미붙여 하는 편이다. 물론 좋아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 그걸 한다고 해서 마구 미쳐 날뛸 정도로 기쁜 것은 아니다. 그저 무덤덤 인간이다. 그래서 나에게 있어서 행복 방정식은 지속시간과 행복을 나눌 사람들의 숫자가 중요하다. 나는 그 두 가지를 늘리는 방향으로 인생길을 다져왔다. 현재까지 결과는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 내가 더 긴 행복의 지속시간을 갖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기로 결심했다면 어떠했을까. 10년, 20년, 아니 인생을 마감할 때까지도 내가 원했던 행복을 겪지 못할 수도 있다.
김경일 교수는 책에서 이야기 한다. 연세대 서은국 교수의 말을 인용한 것인데,
'꿀벌의 꿀은 삶의 목표가 아닌 생존의 도구다'
행복을 인생의 목표가 아닌 생존의 도구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끝머리에 매달린 행복 때문에 그 전의 모든 시간을 희생한다면 그것이 정말 행복한 삶일까? 과연 그렇게 해서는 인생을 지속할 수 있을까? 그 때문에 스스로 삶의 버튼을 꺼버리는 사람들이 꽤 있지 않은가.
순환 논리 같지만 살기위해서 행복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해지니까.
그러기 위해선 인생 전반에 소소한 행복의 빈도를 높여야 한다. 물론 어렵다. 행복의 빈도를 높인다는 것은 행복하기 위해 시간, 돈, 에너지 등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니까. 내가 가진 것이 한정되어 있는데 어찌 빈도를 무작정 높일 수 있나.
그래서 지속 가능하면서도 재활용이 가능한 행복을 찾아야 한다. 내가 행복을 느끼는 어떤 것이 그 다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연쇄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시간, 돈, 에너지 투입량은 높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내가 가진 행복의 역치를 낮춰야 한다. 사소한 것에도 행복해하는 것이다.
글을 써놓고 보니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 것일까.
오늘 글은 여기서 마친다. 끝.